ARTIST

여인
woman

2014
90 x 72.7 cm
Oil on canvas

라우갤러리 ROW GALLERY
박인숙
Pank in sook
작가 전시이력 Exhibition History

2007-2020 한국국제아트페어, 화랑미술제, 부산국제아트쇼, 부산화랑미술제,
미국 뉴욕아트페어·아트햄튼, 프랑스 루브르박물관페어,
일본 도쿄페어·아트오사카, 홍콩페어, 호텔아트페어 등 다수 참석
2014 박수근 3대전 (순수) 고도갤러리, 제주연화랑, 서희갤러리, 라우갤러리
2011 박수근가 3대가 부르는 사랑의 노래(갤러리 디큐브)
2009 국제초대전(캐나다)
2009 천북 면사무소 갤러리

작가설명

소녀에서 여인으로 그 감성에 대하여

박인숙 선생은 작품에서 다양한 한국적 풍경과 정서를 화폭에 담아왔다. 아버지 고 박수근 선생의 작품에 등장하는 어린여자 아이가 이제는 성장해 아버지와 이어진 인연을 그림을 통해 다시 확인한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아버지를 기억하는 딸 박인숙 선생은 그녀의 작품에서 아버지를 그려낸다. 그 시절 보았던 아버지와 가난하지만 맑고 소박한 품성에 늘 수줍음을 탓던 심성 고운 중년을 그려낸다.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작가로서의 그리움의 표현이다. 그래서 그 그리움의 빛깔을 색으로 담아낸다. 곱다고 말하나 투명하다고 말하나 아마도 박인숙 선생의 그리움은 그 빛깔과 맑음으로 다 그려내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갖고 있는 그리움의 깊이는 화폭에 올린 물감의 두께보다 훨씬 두껍고 깊을 것이다.

박인숙 선생이 담아냈던 한국의 풍경에서 ‘소녀’는 그리 흔한 주제가 아니었다. 가끔씩 작품속에 등장하거나 스토리의 한켠에서 말 없이 수줍어 하던 자신을 닮은 ‘아이’였다. 그 ‘아이’ 가 선생의 말처럼 나이를 먹어가면서 천천히 화폭의 중심으로 걸어나왔다. 작가가 나이를 먹듯 그림속의 ‘아이’도 세월과 함께 나이를 먹어갔다.
이제 어엿한 소녀로 하나의 주제로 화폭을 채울 만큼 그 ‘아이’의 이야기는 충분하다. 그림도 나이를 먹는다고 물감도 캔버스도 그 안에 생각들도 인물들도 함께 나이들어 간다고 그래서 더욱 정이 간다고, 선생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한 것이지 실망하거나 힘들어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선생의 삶이 바로 그것을 웅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이 생명력이 있다는 것은 세월의 흐름을 간직하고 소중히 한다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것은 늙지도 않는다. 살아있다는 것 나이들어 간다는 것 그것은 나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며 반증이다. 선생은 그렇게 말한다.

소녀는 그런 의미에서 박인숙 선생이 키워놓은 ‘아이’이다. 커서 어느 날 나타난 아이가 아니라 고 박수근 선생의 그림 강보에 싸여 칭얼대던 그 그림속의 아이가 이제 선생의 작품으로 오고 여기서 커서 어엿한 ‘소녀’가 된 것이다.
소녀는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기도 하고 배시시 웃으며 정면을 바라보기도 한다. 머리에는 그 옛날 어린 시절 선생이 즐겨 보던 꽃들이 머리와 귀밑 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그림속의 ‘소녀’는 박인숙 선생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소녀적 감성을 잃지 않고 산 오랜 세월 선생의 여린 한국적 감성은 ‘소녀’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챙이 넒은 모자를 쓰고 고개를 반쯤 돌리거나 상념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선생이 그 나이에 자신의 생각과 모습이었다고 말한다.
충분히 어둡고 암울한 시대를 지나왔을 선생의 세월이 그림에는 없다 누구도 선생이 그 오랜 세월 풍상의 부침을 지나왔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림 어디에도 선생이 겪었을 상처와 미움, 분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의 마음을 그려낸다면 아마도 저 ‘소녀’와 ‘여인’의 빛깔 그대로 일 것이다.

박인숙 선생은 선생이 지나왔던 지난 시절 가장 아름다웠던 한 장면을 그린다면 아마도 ‘소녀’와 ‘여인’ 일거라고 했다. 그때 보았던 세상과 그 시절 꿈꿨던 것들을 지금 이루어 나가며 ‘여인’ 과 ‘소녀’ 그 시절의 자신과 동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작품들은 현재도 이어지는 나이며 나는 여전히 나이 먹은 ‘소녀’ 이며 나이든‘ 여인’으로 그렇게 살고 싶다고. 선생의 빛남은 그녀가 갖고 있는 ‘소녀’와 ‘여인’의 감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것을 잃지 않는 한 박인숙 선생은 아직도 ‘소녀’이고 ‘여인’인 것이다. 소녀 박인숙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

Artist Description